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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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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의 책표지

 

백수린 작가의 장편 소설 《눈부신 안부》는 한 가족에게 닥친 비극적인 사건 이후 흩어진 이들이 상실을 극복하고 다시 나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소설의 중심에는 1994년 도시가스 폭발 사고로 언니를 잃은 혜미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사고는 혜미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 전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결국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디며 흩어지게 됩니다. 아버지는 한국에 남아 일을 하고, 혜미와 여동생 해나는 신학을 공부하는 어머니를 따라 독일로 이주합니다.

독일에서 혜미는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동시에 겪습니다. 그녀는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와 이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거짓으로 친구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심지어 그 거짓말을 기억하기 위해 일기까지 쓰는 섬세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때 혜미의 이모는 70년대 파독 간호사로 독일로 건너와 의사가 된 인물로, 혜미에게 큰 의지가 됩니다. 이모는 혜미에게 레나와 선호라는 또래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혜미는 이들과 어울리면서 점차 상실의 아픔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해 나갑니다.

소설의 중요한 전환점은 레나와 선호가 혜미에게 선호의 어머니인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주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선자 이모는 뇌종양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고, 세 친구는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첫사랑 찾기에 나섭니다. 첫사랑에 대한 정보는 이니셜 'KH' 외에는 전무한 상황 속에서, 한국어를 이해하는 혜미는 선자 이모의 일기장을 통해 단서를 찾기 시작하고, 세 친구는 마치 탐정처럼 주변의 파독 간호사 이모들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보를 모읍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1970년대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들의 고된 삶과 이주 노동자들의 애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며, 선자 이모의 일기 속에는 그리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온 그녀의 깊은 내면이 드러납니다. 특히 선자 이모의 일기에는 파독 간호사들의 체류권 보장을 위한 서명운동,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연대 등 여성들의 연대 의식과 소수자들에 대한 공감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혜미 가족에게 갑작스러운 IMF 외환 위기가 닥치면서, 그들은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급하게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고,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는 미완으로 남게 됩니다. 소설은 이후 혜미의 현재 모습을 비추며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보여줍니다. 현재의 혜미는 기자 일을 그만두고 특별한 의욕 없이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대학 시절 잠시 인연을 맺었던 우재와 재회하면서 삶에 변화의 조짐을 느낍니다. 혜미는 과거 독일에서의 경험, 특히 파독 간호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십 대 시절 완수하지 못했던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라는 '퀘스트'를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눈부신 안부는 단순한 성장 소설을 넘어 상실의 고통, 가족의 의미, 이방인의 고독, 그리고 연대의 중요성 등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특히 혜미가 언니의 죽음 이후 겪는 죄책감과 슬픔, 타지에서의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거짓말들은 그녀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만난 이모와 친구들은 혜미에게 따뜻한 위로와 지지를 보내며 그녀가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모가 크리스마스에 혜미에게 선물한 편지와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CD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을 공유하며 건넨 진심 어린 위로였고, 이는 혜미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소설 속에서 '다정함'과 '연대'는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힘으로 강조됩니다. 파독 간호사들은 타지에서 서로 의지하며 힘든 시기를 견뎌냈고, 혜미와 레나, 선호 세 친구의 우정은 선자 이모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혜미 또한 과거 썸남의 힘든 시기에 곁을 지켜주는 등 타인에게 위로를 건넬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소설의 제목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전해지는 따뜻한 안부와 같은 사랑의 힘이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결국 상실은 끝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 그리고 눈부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용기를 주는 이야기가 바로 《눈부신 안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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